죄책감은 칼로리보다 무겁다

폭식이 끝난 뒤의 공통 반응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. "왜 그랬지?", "진짜 이번엔 너무 갔어", "이러고도 사람이냐…" 같은 자아비판 3종 세트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죠.
그런데 웃긴 건, 먹을 땐 행복했고 다 먹고 나서 후회한다는 겁니다. 마치 연애할 때는 몰랐는데 헤어지고 나서 '그때 걔 왜 그랬지?' 하는 감정과도 비슷합니다. 공통점은 이미 끝난 일이라는 거고, 다른 점은 음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죠. (단, 남은 치킨이 냉장고에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.)
죄책감이라는 건 본래 잘못한 걸 되돌리기 위한 감정이지만, 음식 앞에서는 애매한 감정입니다. 왜냐고요? 먹는 건 죄가 아니니까요. 생존의 기본이자, 가끔은 삶의 낙이잖아요.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음식 앞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. 먹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생각보다 깊은 곳에서 우릴 괴롭히고 있습니다.
그래서 중요한 건 사고의 프레임을 바꾸는 겁니다. ‘나는 왜 이렇게 자제력이 없지?’가 아니라 ‘요즘 나 많이 지쳤나 보다’라고 해석해 보는 거죠.
폭식은 자제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, 마음이 보내는 신호일 수도 있어요. 스트레스, 외로움, 지루함, 혹은 단순한 피로. 감정이 음식으로 해소되는 건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. 죄책감을 덜어내고 싶은가요? 그럼 먼저 나를 이해해 보세요. 그게 가장 첫 번째 마음의 회복입니다.
"이게 다 내가 약해서 그래"는 이제 금지어로 하자
자기비판은 어느 정도면 자기 성장이지만, 지나치면 자존감 파괴범이 됩니다. 특히 폭식 후에 나오는 자기 비난은 대개 과장되어 있죠. "나 진짜 한심해", "평생 살 못 뺄 거야", "나는 의지가 없어" 같은 말들은 마치 영화 속 악역이 주인공을 조롱하는 대사처럼 강력합니다. 문제는 그 악역이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거예요.
하지만 이런 자기비판에는 큰 착각이 숨어 있습니다.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낄 때, 스스로를 혼내면 해결될 거라 믿습니다.
하지만 실제로는, 혼나는 건 상황을 악화시키는 지름길입니다. 어릴 적 부모님에게 혼나고 울면서 과자 몰래 먹던 기억, 떠오르시죠? 그 패턴은 어른이 되어도 반복됩니다.
폭식 후 자기 비난은 반복적인 폭식을 부추길 수 있어요. 왜냐하면 죄책감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, 또다시 음식에 의지하게 되거든요.
그러니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, 내면의 ‘잔소리꾼’을 잠시 침묵시켜야 합니다. 대신 마음속에 ‘다정한 친구’ 하나를 초대해 보세요.
그 친구는 아마 이렇게 말할 거예요. “요즘 너무 바빴잖아, 이 정도는 괜찮아. 몸도 마음도 좀 쉬고 싶었던 거지.”
자기비판 대신 자기 이해. 이것이 진짜 변화의 시작입니다. 식단표보다 먼저 써야 할 건, 스스로를 향한 이해의 문장이에요.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언어를 바꿔가다 보면, 어느새 음식과의 관계도 바뀌기 시작할 거예요.
작은 일상으로 다시 ‘나’를 찾아가는 법
폭식 후엔 다짐을 많이 하게 됩니다. “내일부터 다시 클린식단!”, “이번 주는 탄수화물 금지!”, “운동은 하루도 안 빠질 거야!” 등등.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다짐은 대부분 월요일과 함께 사라지죠.
마치 새해 목표처럼 말이에요. 왜일까요? 너무 극단적이기 때문입니다. 몸도, 마음도 극단적인 변화에는 쉽게 지치게 마련이죠.
대신 우리는 ‘작은 루틴’으로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. 물 한 잔 더 마시기, 10분 산책하기, 한 끼는 천천히 음미하며 먹기. 이런 사소한 행동들이 쌓이면서, 어느 순간 우리는 다시 ‘돌아왔다’고 느낄 수 있어요.
마치 잃어버린 열쇠를 찾은 것처럼 말이죠.
그리고 가끔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해도 괜찮습니다. “그래, 어제는 좀 많이 먹었어. 근데 그거 하나로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.” 이 말이 어쩌면 가장 필요한 셀프 세러피일지도 몰라요.
자기 자신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가, 때로는 어떤 다이어트 식단보다도 강력한 회복제가 될 수 있으니까요.
폭식 후 죄책감을 벗어나는 일은 단지 ‘먹은 걸 없던 일로 하자’는 게 아니라, ‘그 순간의 나도 이해해 주자’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.
몸보다 마음을 먼저 회복하는 것, 그게 진짜 케어입니다.